비잔틴 총대주교는 어떻게 되었을까 - 위키피디아 로마사 리뷰 033 위키백과 간단로마사


로마제국의 성직위계제도는 어찌되어있었을까. 아마도 5개의 제국 주요 도시가 수위권을 주장하고 있었다. 수도 로마가 최고의 수위권을 주장한 것은 교황이라는 칭호에도 남아있다. 그 밖에 제국 대도시 안티오크와 알렉산드리아가 그랬다. 제2수도인 콘스탄티노플 역시 어떤 면에서도 이들에 뒤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들과 도시규모에서 겨룰 상대는 아닌 예루살렘이 그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이들과 함께 소위 총대주교좌의 위상(Patriarchate)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마와는 달리 동로마에서는 교권이 황제권의 제약을 받았으나 어쨌든 그는 동로마 교계의 수장이었다. 그렇다면, 동로마 제국이 멸망했던 1453 년 이후에 이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제가 어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과연 이 제도는 어떻게 되었을까. 동로마제국이 영토를 아랍에 빼앗겼더라도 이슬람 지배하에서라도 총대주교제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들을 수 없다. (단, 안티오크는 십자군실패 후 보헤몽이 라틴총대주교를 세운 이래 분열이 심하였으며 거의 일찌감치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었다.) 더구나, 유럽인 바에야 그리 쉽게 없어졌을 것 같지는 더더욱 않다.

이 총대주교제는 콘스탄티노플을 멸한 술탄 마흐메드 2세의 손으로 되살려졌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가 동로마제국의 직접적 계승자로 스스로를 "로마의 카이사르(Kayser-i-Rûm)"라고 부르게 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이 동방교회 수장직을 유명한 수도사였던 겐나디우스 2세에게 제수하였다. 오토만제국은 그의 제국을 밀레(millets)라는 종교족군(宗敎族群)으로 나누었는데 최대의 밀레였던 룸(로마)의 종교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최고지도자이기도 한 룸 밀레(Millet-i Rûm)의 장 밀레바시(millet-bashi) 혹은 에쓰나르크(ethnarch)였다. 제국과 술탄과는 뜻이 맞지 않았던지 몇 차례 사임하기도 했다. 그의 후임자들도 종종 제국에 의해 탄압받아 처형되기도 했다. 그리스 독립 전쟁에서는 게오르기오스 5세 총대주교의 무능함을 이유로 수도 내 그리스인들과 함께 처형했다. 이들의 시체를 처리했던 것이 유대인이라고 한다.

19세기에는 발칸의 민족주의 열풍과 함께 각 민족교회들이 독립해 나갔고 그리스와 터키만 직접 감독한다. 오늘날 터키는 그 선출 자격을 터키인 즉 그리스계 터키인으로 한정하고 그리스소수민족의 영적지도자로 인정한다고 한다.


이 양두독수리가 이 주교좌의 엔블럼이다 



덧글

  • 8비트소년 2015/07/22 13:09 # 삭제

    지금도 이스탄불 구시가지에 정교회 총대주교좌 성당이 있습니다. 눈에 잘 안띄는 곳에 있고 대주교님 대접도 그닥 좋지는 않은데 어쨌든 그리스인들에게는 정신적 지주더군요. 교황님보다는 실제로 뵙기가 훨씬 쉬워서 저도 이스탄불에서 두번 본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골프장 클럽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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