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루스 카이사르의 유대전쟁 - 위키피디아 로마사 리뷰 031 위키백과 간단로마사


위키백과는 매일매일 발전하고 있네요. 로마제국쇠망사와 담을 쌓고 지낸지 꽤 시간이 된 지금 예전에는 발견치 못했던 항목이 계속 보이네요. 새로 추가되었는지 그 때 못 찾았는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아들 콘스탄티우스 2세가 서방(서로마) 영토를 병합하러 출정할 때 잠시 자기 영토인 동방을 사촌인 갈루스 카이사르(부황제)에게 맡긴 일이 있었습니다. 대역사가 암미아누스의 상세한 기록에는 갈루스의 통치에 대해서는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기록중 남은 것은 갈루스가 사촌에게 처형당하는 때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역사식자들 사이에 안좋은 평이 많은 시오노 나나미는 유대 반란을 갈루스가 진압한 공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통상 갈루스가 폭군 콘스탄티우스에게 제거되긴 했지만 그 역시 그 보다 더한 폭군이란 평가가 주라 이런 건 정말 뜻밖이죠. 물론, 이런 전통적 시각 말고 요즘의 재해석으로는 갈루스가 적어도 동방에 대한 방위는 잘했다고 봐줍니다. 보통 로마사에 자 언급되지 않는 이 언급을 시오노 씨의 망상으로 보아야 할까 저는 적지 아니 고민했는데 최근 그것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로 기독교사가들의 기록 속에 언급이 되어 있었네요. 소조멘((Sozomen, IV.VII)에 의하면, 디오카이사리아(Diocaesarea)에서 일어나 팔레스타인을 휩쓴 반란을 이 카이사르(부황제)의 로마군이 진압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우쭐해진 갈루스가 교만한 행동으로 정제가 될 야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를 처형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갈루스가 정제 콘스탄티우스의 소환령을 충실히 지킨 것으로 보았을 때 정말 그런 역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사가는 없습니다. 소크라테스의 기록도 비슷합니다.

이 반란은 그 도시의 이삭(Isaac)이라는 사람이 파트리쿠스(Patricus)라는 인물의 종교적인 지원을 받았다고도 하고 당시 로마군을 무장해제시키고 인근 그리스계 이교도와 사마리아인들을 학살하였다고도 합니다. 물론 유대인들에 대한 모략일 수 있습니다. 갈루스는 모에시아의 시르미움에서 그곳의 지휘권을 이를 가지고서 황제로 추대되었던 베트라니오에게서 빼앗고 그를 은퇴시킨 다음 서방원정에 주력하기 위해 갈루스를 동방의 부제로 임명해 콘스탄티노플이 아닌 안티오크로 보냈답니다. 갈루스는 동방을 담당하는 대장군직에 있었던 우르시키누스를 보내 이를 진압하게 했습니다. 우르시키누스는 역시 대사가 암미아누스가 모셨던 상관이었는데 만일 관련 부분이 남아 있었다면 이 사태를 어떻게 기록했을까요. 암미아누스의 기록에서는 결국 공을 세우고도 폭군에 의해 물러나야 했던 상관에 대한 변명과 그에 대한 미화가 많이 있어 옥석을 가려야 한다고들 합니다. 어쨌든, 이 유대반란 진압도 비운의 사령관 우르시키누스가 했다는 것은 좀 뜻 밖입니다. 반란의 원인은 당시 기독교화하는 제국내에서 횡행하게 된 유대교 탄압 및 강제개종이라고도 하는데 달리는 세금 등 경제적 수탈이 진짜 이유라고도 합니다.


당시의 형세










로마제국쇠망사

몸젠 로마사 (번역) by DreamersFle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