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신분파에 수난당한 메카 서양사


헤지라曆(력) 277년의 쿠파(Cufa) 인근에 이름을 까라미타(Carmath)라 하는 한 아랍 說敎師(설교사)가 案內者(안내자), 監督者(감독자), 實證(실증), "말씀", 聖靈(성령), "낙타",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과 대화하는 "메시아(Messiah)의 傳令(전령)", 알리(Ali)의 아들 무하마드(Mohammed)와 洗禮(세례) 요한과 天使(천사) 가브리엘의 대변인이라는 고고하고 난해한 칭호를 자처하였다. 그의 神秘(신비) 서적에서, 코란(Koran)의 誡命(계명)들은 더 靈的(영적)인 의미로 고양되었다. 齋戒(재계), 禁食(금식), 巡禮(순례)년에 대한 의무는 완화하고, 술과 금지 음식에 대해서는 무차별적 사용을 허용하며, 매일 50회 기도의 반복을 통해 그의 제자들의 열정을 배양했다. 무식한 군중의 나태와 소동이 쿠파(Kufa)의 관리들의 주의를 일깨웠다. 미미한 迫害(박해)는 이 새 宗派(종파)의 진보를 조력하였으며, 이 豫言者(예언자)의 이름은 그가 세상을 뜸에 따라 더 존경받게 되었다. 그의 열두 使徒(사도)들은 베두인族(족)
 아불페다(Abulfeda)의 말로 "이성과 종교가 동등히 결여된 인간종족"

사이에 기반을 잡았다. 그의 說敎의 성공은 아바리아(Arabia)를 새 혁명으로 위협하는 것 같아 보였다. 까라미타派(파)가 아바스家(가)의 칭호를 거부하고 바그다드(Bagdad)의 칼리프들의 세계적 과시를 혐오한 탓으로, 반란의 기회가 무르익게 되었다. 神(신)과 人民(인민)의 목소리로 豫言者의 직무로 호출되었다는 이맘(Imam)에게 맹목적 절대적 복종을 바치는 것은 紀律(기율)의 준수에 민감하게 이들을 얽어맸다. 합법적 十一租(십일조) 대신 그들 수입과 전리품의 오분의 일 세금을 주장했으며, 그들 중 가장 극악한 죄는 불복종의 같은 것들이었다. 이들 兄弟(형제)간에는 秘密盟約(비밀맹약)으로 연합되었다. 한 流血(유혈)충돌을 통해서 걸프灣(만)을 따라 멀리 그리고 넓게 바레인(Bahrein)의 屬州(속주)에서 흥성하게 되었으며, 결국 이 사막의 종족은 아부 사이드(Abu Said)와 그의 아들 아부 타히르(Abu Taher)의 笏(홀) 아니 차라리 劍(검)에 복종하였다. 이 이맘派 叛徒(반도)들은 전장에 10만 7천의 무리들을 끌어드렸다. 칼리프의 傭兵(용병)들은 慈悲(자비) 따위는 구하지도 받지도 않는 적의 접근에 당황했는데, 용기과 인내에서의 둘의 차이는 3세기간의 번영이 아라비아人 속에 심어준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런 軍團(군단)은 모든 행동에서 허둥지둥거렸다. 라카(Racca)와 바알베크(Baalbec), 쿠파(Cufa)와 바쏘라(Bassora) 市(시)들이 탈취되고 약탈되었다. 바그다드(Bagdad)는 경악했으며 칼리프는 궁전 뒤의 베일에서 벌벌 떨었다. 티그리스江(강)을 넘는 대담한 침입 중에 아부 타히르는 겨우 500 騎(기)로 수도 城門(성문) 앞으로 나아갔다. 목타데르(Moctader)의 특별명령으로 다리가 파괴되었으며, 叛徒의 인명과 수급이 신앙자들의 사령관이 매시간 고대했었다. 근심이 생긴 그의 부관은 아부 타히르에게 위험을 알리면서 신속한 탈출할 것을 권하였다. 

"네 주인은" 이 대담한 까라미타派 교인은 전령에게  한 말에  "3만 병사들의 우두머리긴 하나,  이런 사람 셋은 그 중에 없을 것이다"

라면서 동시에 수행자 세명을 향해 돌아서 첫 사람은 가슴을 단도로 찌르고 두번째는 티그리스江로 뛰어들고 세번째는 절벽에서 꺼꾸로 떨어지라고 명했다. 그들은 군소리 없이 따랐다. 

"알려라"라고 이어 이맘(imam)은 말했다.  "네가 본 것을. 저녁 전에 너의 대장은 쇠사슬 묶은 내 개들 속에 있을테니." 

저녁 전에 병영지가 기습당했고 그 협박은 실행되었다. 까라미타派의 강탈은 메카崇拜(숭배)에 대한 嫌惡(혐오)로 인해 신성시되었다. 그들은 캐러반에서 巡禮者(순례자)들을 끌어내 2만의 독실한 무슬림들을 불타는 사막열에 내버려 굶주림과 목마름 속에 죽게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교적 헌신의 향연 속에서 아부 타헤르는 이 神聖(신성) 도시를 덮쳤고 무하마드 신앙의 가장 기려지는 유물을 짖밟았다. 3만의 시민들과 이방인들이 칼을 받았으며 神性 구역이 3천의 죽은 시체의 무덤으로 오염되었다. 젬젬(Zemzem)의 우물이 피에 물들었으며 황금 수도꼭지가 그 자리에서 강탈되었다. 카바(Caaba)의 베일은 이 경속한 宗派(종파)들 사이에 찢기었다. 이 民族(민족) 최고의 기념물인 그 검은 돌이 그들의 수도로 개선행렬을 따라갔다. 이 신성모독과 흉포한 행동 끝에, 그들은 이라크와 시리아 그리고 이집트 경계에 계속 횡행했다. 그러나, 열정의 중요한 원리는 그 뿌리까지 시들어 버렸다. 그들의 도덕관념이나 혹은 변덕이 메카巡禮 길을 다시 열었고 카바의 검은 돌도 돌려주었다. 어느 派가 붕괴되었는지 누구의 劍이 박멸당했는지 조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까라미타派는 칼리프帝國(제국)의 衰亡(쇠망)의 가시적 두번째 原因(원인)이었다. 

-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쇠망사>, 제52장



이슬람력으로 277년이라면 서기로는 891년 쯤된다. 서기 951년가지 시아파의 분파로 생각되는 까라미타 종파는 바그다드 칼리프로부터 조공을 받을 정도로 강력한 이슬람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들 광신도들은 이슬람의 성지 메카나 카바의 숭배조차 인정하지 않았고 이들에 신심 깊은 광신도들에 의해 메카와 각종 성물은 피빛으로 이들 광신도들에 의해 물들여졌다.













로마제국쇠망사

몸젠 로마사 (번역) by DreamersFle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