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제노아 전쟁 중의 동로마제국 서양사


그러나, 皇帝(황제)는 곧 條約(조약)을 파기하고 제노아(Genoa)와 그 植民(식민)우호도시들의 영원한 숙적인 베네치아人(인) 측에 합류하라는 청을 받았다. 戰爭(전쟁)과 平和(평화) 사이의 득실을 따져보다가, 皇帝는 페라(Pera)의 주민의 돌연한 가해에 화가 났다. 그들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한복판에 큰 돌덩이를 자기 요새에서 떨어뜨렸던 것이다. 정당한 皇帝의 불평에 그들은 工兵(공병)들의 부주의 탓으로 돌릴 뿐이었으나, 다음날에도 공격은 반복되었으며 오히려 그들의 皇都(황도)가 투석기 사정거리 밖에 있다는 것을 재차 증명하였다는 것에 의기양양해 할 뿐이었다. 칸타쿠제노스(Kantakouzenos)는 즉시 베네치아人과의 협정에 서명했으나, 이 로마帝國(제국)의 비중은 강대하고 빛나는 이들 共和國(공화국)들간의 힘의 균형에 영향은 크지 않앗다. 지브롤터海峽(해협)에서 타나이스(Tanais) 江(강)어귀까지 이들의 艦隊(함대)가 서로서로 많은 성공을 거두며 맞섰고 기억할 만한 戰鬪(전투)가 이 좁은 바다에 콘스탄티노플 성벽 아래에서 있었다. 그리스人과 베네치아人과 제노아人들의 기록을 절충하는 것은 쉬운 일이아니다. 著者(저자)는 公正(공정)한 한 史家(사가)에 의존하겠지만, 각 國(국)에서 적의 영예이자 자기의 치욕을 더할 事實(사실)을 찾아낼 것이다. 베네치아人은 同盟(동맹)인 카탈루냐人과 함께 숫적 우위를 가져서 8척 뿐인 비잔틴帝國의 戰艦(전함)을 합쳐도 72척이나 되었다. 제노아人의 경우 최대 64척을 넘지 않았으나, 이 시기의 전쟁 배들은 크기와 강도가 중요시되었다. 그들의 海軍(해군) 지휘관의 가족 이름들 피사니(Pisani)와 도리아(Doria)는 자기 故國(고국)들의 연대기사에 뛰어난 존재들이나, 前者(전자)의 개인적 재능은 그의 경쟁자에 의해 빛이 바랬다. 그들은 폭풍우치는 날에 교전해 혼전을 새벽부터 저물도록 계속했다. 제노아人의 적들은 그들의 기량에 찬사를 보냈다. 베네치아人들의 同盟들은 그들의 움직임에 불만이었으나, 兩者(양자) 모두 카탈로냐人들의 기술이나 대담성을 훌륭하게 보았다는데는 같았다. 카탈로냐人들은 많은 상처를 입고도 예봉을 꺽지 않았다. 양측 艦隊간이 분리되자 승부는 의심스러운 상태였으나, 13척의 가라앉거나 나포된 제노아 戰艦은 同盟 측이 입은 갑절의 손실로 보상받았다. 베테치아 10척 카탈로냐 10척 그리스 2척이었으며, 정복자들의 슬픔 조차 더 결정적 승리에 대한 확신의 버릇이었다. 피사니(Pisani)는 要塞港(요새항)으로 배를 돌려 패배를 자인하였고 元老院(원로원)의 명령을 핑계로 칸디아(Candia)島(도)를 향해 패한 分隊(분대)를 몰았고 競爭國(경쟁국)에 바다의 지배권을 포기하였다. 도체(doge)와 元老院에 보내는 공개 서한에서, 페트라르카(Petrarch)는 이탈리아의 두 별이라 할 두 海洋强國(해양강국)을 화해시키려고 그의 달변을 보이었다. 이 演說家(연설가)는 해전의 으뜸인 제노아人의 용기와 승리를 축하했다. 또한 베테치아 兄弟(형제)의 不運(불운)에 눈물을 흘렸리며 천박하고 배신적 그리스人을 불과 칼로 쫓아가서 異端(이단)에 감염된 東方(동방)의 거대도시를 구축할 것을 촉구했다. 동맹에 버려진 그리스人은 저항할 능력이 없었고 戰鬪 후 3개월만에 칸타쿠제노스 황제는 협정을 간청해 서명했다. 베네치아人과 카탈로냐人들을 영구히 추방하고 제노아人에게 무역의 독점권 즉 거의 지배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만일 이 共和國의 야심이 자유와 해군력의 파괴에 의해 제지되지 않는다면 로마帝國(著者는 이 말을 쓰고도 웃을 뿐이다)은 겨우 제노아國의 일개 屬州(속주)에 떨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130년의 긴 투쟁 끝에 베네치아의 승리가 결정되었고, 제노아인의 당파는 외국 군주, 밀라노公(공)과 프랑스王(왕)의 보호로 국내평화를 지켜야 했다. 투르크人이 콘스탄티노플을 최후의 예속상태로 빠뜨릴 때까지, 페라의 식민지는 여전히 그 首都(수도)에 놀라워 하며 黑海(흑해)를 항해했다.

-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쇠망사>, 제63장

베네치아와 제노아 두 이탈리아 해상강국의 라이벌전에서 그들의 패권다툼은 비잔틴제국 자체에 대해서 행해졌을 만큼 동로마의 축소된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번은 제노아공화국의 일개속주로 떨어진 것이라고 했다.








로마제국쇠망사

몸젠 로마사 (번역) by DreamersFle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