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플의 거지황제 서양사



이 皇家(황가)의 젊은이는 그의 氣質(기질)에 좀더 알맞은 임무에 채용되었다. 그는 西方(서방)의 宮廷(궁정)들을 방문했는데 敎皇(교황)과 불왕(佛王)의 거소에서 그의 순진무구와 박해에 대한 동정심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三回(삼회)나, 그는 이런 托鉢用(탁발용)의 방문을 했는데, 滯留(체류) 기간은 늘리고 歸還(귀환)은 미루려는 것처럼 보였다. 25년간의 재위 중에 훨씬 많은 기간을 故國(고국)이 아닌 海外(해외)에서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어느 곳도 그의 故國과 首都(수도)보다 덜 편안하고 자유로운 곳은 황제에겐 없었다. 몇몇 공공행사에 그의 虛榮心(허영심)은 Augustus(아우구스투스)라는 稱號(칭호)와 御衣(어의)의 榮譽(영예)로 달래지곤 했으며, Frederic the Second(프리드리히 2세)가 破門(파문)과 退位(퇴위)를 당하는 리용(Lyon)의 公議會(공의회)에서 그의 東方(동방)의 동료는 敎皇의 오른편의 王座(왕좌)에 앉았다. 그러나, 追放者(추방자)이며 流浪人(유랑인)이고 또 皇家(황가)의 거지가 輕蔑(경멸)에 비굴해지고 同情心(동정심)에 상처받으며 자신의 눈은 물론 여러 國家(국가)들의 이목에서 추락하는 것은 또 얼마나 자주 있었던 일이던가! 英國(영국) 땅에 처음 방문할 때는 獨立王國(독립왕국)에 無斷(무단)으로 들어온다는 심한 責望(책망)에 Dover(도버)에서 제지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제지가 풀린 Baldwin(보두앵)에게 旅行(여행)이 許可(허가)되었으며 차가운 겉치례로 대접받으면서도 고맙게도 700 마르크를 받아 떠났다. 변덕스런 Rome(로마)에서는 겨우 十字軍(십자군)의 (원정) 선언과 免罪符(면죄부, indulgence) 약간을 얻을 수 있었다. 後者(후자)란 그 너무 잦고 가차없는 濫用(남용)으로 通貨價値(통화가치)가 매우 절하된 동전이었다. 그의 出生(출생)의 悲運(비운)은 그의 사촌인 Louis the Ninth(루이 9세)에게 자신을 호소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 聖人(성인)의 武勇心(무용심)은 Constantinople(콘스탄티노플)에서 Egypt(이집트)와 Palestine(팔레스타인)으로 바뀌었으며, 마지막 남은 상속분인 Namur(나무르)의 侯爵領(후작령)과 Courtenay(코트뉴)의 領地(영지)의 讓渡(양도)로 Baldwin(보두앵)이 公私(공사)의 가난의 壓迫(압박)에서 잠시 풀려날 수 있었다. 이런 羞恥(수치)스럽고 破滅(파멸)적인 旅程(여정)에서 다시 한번 Romania(로마니아)로 그는 3만의 군사와 함게 돌아왔는데, 이 兵力(병력)은 그리스인의 근심스런 눈에는 갑절이 되어 보였다. 영불(英佛)에 대한 첫 사절 파견은 그의 勝利(승리)와 希望(희망)을 고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首都 주변의 땅 중 3 行程(행정) 거리내에 있는 곳을 服屬(복속)시켰으며, 일개 중요하나 무명의 도시 하나 (아마도 Chiorli)에서 성공했더라도 이 國境(국경)이 보호되고 通行接近(통행접근)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원정은 (비록 Baldwin은 진지했으나) 一場春夢(일장춘몽) 처럼 산산히 부숴졌다. 프랑스의 軍隊(군대)와 財寶(재보)는 그의 未熟(미숙)함으로 사라져 버렸으며 라틴帝(제)라는 王座는 투르크족(族)과 코만족(Coman族)과의 不名譽(불명예)스런 同盟(동맹)으로 保全(보전)되었던 것이다. 前者(전자)와의 同盟을 保存(보존)코자 그는 그의 姪女(질녀)를 Cogni(코그니)의 不信者(불신자)적 술탄(sultan)에게 시집보내는 것에 동의하였다. 後者의 비위를 맞추려 그는 異敎(이교)의 의식을 행했다. 개 한마리가 두 軍隊 사이에서 犧牲祭(희생제)에 쓰였으며 兩者(양자)는 信義(신의)의 證票(증표)로서 서로의 피를 맛보기도 했던 것이다. Constantinople의 宮殿(궁전) 혹은 監獄(감옥)에서, 이 Augustus의 後繼者(후계자)는 겨울 燃料(연료)가 없는 빈 집들을 破壞(파괴)했으며 그의 家計(가계)를 위해 敎會(교회)에서 납ㅇ르 떼어갔다. 이탈리아(Italy) 商人(상인)의 高利貸(고리대)가 빈손으로 처리되고 자기 아들이자 상속인인 필립(Philip)은 베니스(Venice)에서 빚보증을 위해 저당잡혀졌다. 갈증과 헐벗음이 실제 악이라면 부유함은 상대적인 것이었다. 私的(사적)으로 부유한 君主(군주)도 필요경비에 의해 가난에 대한 모든 근심과 비참함에  노출될 수 있다. 

 -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쇠망사>, 제61장


4차 십자군운동의 결과로 비잔틴제국을 찬탈하고 만들어진 라틴제국의 마지막 황제 보두앵 2세의 이야기입니다.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와 비길 만한 정도군요.








로마제국쇠망사

몸젠 로마사 (번역) by DreamersFle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