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로 남은 청동기 시대의 멸망의 흔적들 동양사


청동기 세계의 종말이 "폭력적이고 급발적이며 파괴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어왔다는데 이것은 주로 동부 지중해와 서남아시아 즉 오리엔트라 불리우는 문명의 본향(本鄕)과 그리스 지역에 상당히 근거가 있는 말인듯 하다.

혼돈. 파괴. 그리고 망각. - 청동기 세계의 멸망.

뿐만 아니라, 극동(極東)의 자그마한 나라 한국(韓國) 역시 그와 비슷한 현상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질만한 단서같은 것이 아주 없지 않은 모양이다.

청동기시대의 멸망? -남한 지역의 경우.

사실 이 변화 중에 서양의 경우 멀쩡하게 사용되던 문자가 절멸되었다고 했고 그것이 그 시대가 쉽게 잊혀졌던 이유라 생각되어 진다. 그럼에도 불구, 생각해 보면 이런 급변하는 시대적 타락에 대한 기억들이 적어도 그리스인에게는 희미하지만 어느 정도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한번 저 오리엔트와 한국에서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 전설속에서는 어떻게 남았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다시 말하지만, 적어도 지중해와 오리엔트를 휩쓴 대격변 즉 철의 혁명에 대해서는 비교적 뚜렷한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왔다고 할만한 점이 있어 보인다. 예컨대 그리스의 경우 위의 혁명의 결과 문자사용이 절멸되는 암흑기가 도래하게 된 만큼 그에 따른 다소 염세적인 생각이 전해졌다고 누구나 추측해 볼 수 있다. 실제로 그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소위 그리스의 전설에 남은 "황금시대(Golden age)"라고 할 수 있다. 이 황금시대라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던 너댓의 시대 즉 황금의 시대, 은의 시대, 청동의 시대, 철의 시대 중의 첫번째다. 거의 호머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을 헤시오드(Hesiod)는 <일과 날>에서 황금종족에 대해서는 에덴동산에서 살던 낙원의 민족과 비슷하게 보면서 이후로 조금씩 이런 선민(選民)들은 멸종되고 보다 타락하고 사악한 인간들이 속속 이전의 순수한 사람들이 멸종된 뒤를 이어 나타난 것이라 했다. 황금시대가 아닌 그 후의 모든 시대에 대해 헤시오드는 비관적이다. 하지만, 청동시대를 열렬히 예찬한 사람도 있었으니 그가 바로 다름 아닌 불멸의 고전작가 "호메로스(Homer)"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The Iliad)>가 그리는 트로이전쟁 시대는 청동시대이고 이 대서사시에는 그리스연합군의 최고 영웅이자 지휘관인 아가멤논(Agamemnon)이 싸울 때 영광스럽게 빛난다고 묘사하는 무기와 갑옷에서부터 그의 전리품들에 이르기까지 온통 청동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모습은 아가멤논 뿐 아니라 양측의 영웅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호메로스가 묘사 중에는 그의 당대엔 사용되지 않았을 보다 이른 시기의 양식으로 장식된 물품이 나타난다고 한다. 즉 그리스인들은 철기시대에 문자를 잃었지만 어느 정도는 그 이전의 청동시대에 대해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호메로스는 이 영웅의 시대를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트로이전쟁이 있은 후 미케네 문명의 멸망과 잇따르는 암흑의 철기시대가 도래한다.

한편, 헤시오도스는 청동시대와 철의 시대의 중간에 트로이의 영웅들을 위하여 "영웅의 시대"를 두고 있다. 청동시대 종족들에 대해 "그들의 갑옷도 청동이고 집도 청동이고 장비들도 청동인데 검은 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며 이들은 싸움만을 일삼았기 때문에 전쟁으로 멸종되었다고 하였으니 아마도 청동문명의 종말과 은연중 맞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전쟁에 대해 역시 비관적 태도를 보이지만 고고학적으로 여전히 청동시대인 "영웅의 시대"-트로이 전쟁기를 말함-를 만들어후손들로부터 길이 전해질 명예와 존중이 바쳐질 호메로스의 주인공들을 잠시 변명한 다음 철의 시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이 받은 그리스 청동투구>

<다시 제우스(Zeus )의 심모원려는 또 다른 세대를 만들었는데 너그러운 대지위 인간의 다섯째지만 나는 차라리 그 다섯째 세대의 인간들과 있지않고 그 전에 죽거나 이후에 나았으면 하오. 이것은 지금 진정으로 철의 종족이어서 낮엔 노동과 슬픔으로 부터 밤엔 죽음으로 부터 쉴 수가 결코 없으며, 신은 그들에게 쓰디쓴 고난을 남기실 것이오. 그러나, 그럼에도 이것들 조차 약간의 선이 그들의 악과 섞일 것이오. 그리고 제우스(Zeus)는 죽을수 밖에 없는 이 종족의 인간들을 탄생한 사원에서 백발이 성성할 때 파괴할 것이오. 아버지는 그의 자식과 맞지 않고 자식은 아버지와 맞지 않고 손님은 주인과 동무끼리도 맞지 않을 것이며, 형제가 예전 형제가 아닐 것이오. 그가 급히 자라니 그의 부모를 무시할 것이고 심한 말로 그들을 나무랄 것이며 냉담한 가슴으로 신의 두려움도 모를 것이오. 그들은 나이든 부모에게 양육의 비용을 되갚지 않을 텐데 그것이 그들의 권리가 될지 모르고 어떤이는 다른 이의 도시를 약탈할 것이오.  맹세를 지키는 사람이나 의인이나 선인에게 호의를 가지지도 않으며 차라리 악행하는 이나 폭력행사를 칭찬할 것이오. 힘이 권리가 되고 존경은 그렇지 못하게 되고 사악한 자가 가치있는 사람을 해치고 그에게 거짓된 말을 하고 그들에게 맹세를 할 것이오. 우거지상으로 악의에 차서 험담하며 질투가 끔찍함을 당한 이들을 여기저기 따라 갈 것이오. 그리고 그때는 아이도스(Aidos염치)와 네메시스(Nemesis-의분)가 하얀 예복으로 싼 달콤한 방식으로 길이 넓은 대지로부터 인류를 버려두고 북사신들의 종족에게로 가버릴 것이며 쓰디쓴 슬픔이 죽어야만 하는 인간에게 남겨질 것이며 악에 대한 도움은 없을 것이리라. >

대략 서로 속고 속이며 끝없는 중노동의 수레바퀴를 돌리거나 그 밑에 치여야 하는 것이 철의 시대의 세태라는 것이다.

<그리스의 영웅 헤라클레스: 그는 방망이 하나로 그리스 민족의 시조가 되었다>


<청동시대를 찬양했던 불멸의 작가 호메로스>

사실 중국에서도 이와 같은 비슷한 기억은 있는 줄 안다. 철기가 중국에서 쓰이기 시작한 때를 대략 "전국시대(戰國時代)"라 구분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철기의 발명이 인류 사이의 갈등을 부추겨서 전쟁을 일삼게 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는데 중국의 구체적인 유적유물의 관계와 분포는 잘 모르겠다. 다만 참혹한 전쟁 기록이 많이 있고 전국 말기에 이르러 전쟁으로 인한 대량학살이 있었다는 기록과 그 유적들을 본 기억이 난다. 아마 백기(白起)의 학살로 기억한다. 아마도 헤시오드가 말한 황금시대는 중국의 요순시대 쯤 되지 않을까 하며 중국인의 인식으로도 그 후 그나마 예법(禮法)이 잘 확립된 주(周)를 거쳐 점점 인간세가 타락했다는 것은 비슷한 톤인듯 싶다. 단지 서양인은 그것을 도구의 발명에 따른 시대적 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관을 시킨 것이 좀 다른 점이다.

<신석기 중국의 태평성대의 군주 요(堯)>

그리고 한국에서도 과연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청동기마을이 급격히 몰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은 있어 온 듯하다. 찾아보면 결국 한반도에 철기가 본격 유입된 것은 역시 중국으로 부터이므로 그와의 기록을 살펴보아야 하는데 국내에는 이렇다할 오랜 역사 기록이 없고 다만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아들을 낳으니 단군왕검(壇君王儉)이라 불렀는데 당요(唐堯) 50년 경인(庚寅)년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조선(朝鮮)이라 처음 칭하고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로 옮기고 궁홀산(弓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 하였다. 나라 다스린지 1500년 주무왕(周武王)이 즉위한 기묘(己卯)에 기자(箕子)를 조선(朝鮮)에 봉(封)하여 단군(壇君)이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겨 후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山神)이 되니 연세가 1908세였다.>

여기서 일연이 한국사의 단군조선에 관해서 2번의 큰 사건을 설명하고 있는데 한 번은 기자가 조선에 수봉을 한 것과 그의 나이 1908년에 죽었다는 것인데 후자의 시기는 대략 서기전 5-4세기 경이라 소위 중국의 철기시대와 대략 겹친다. 사실 기자의 조선수봉설에 경우 그 전승의 진실이 어느 정도 확인되어 유명해 진 바 "기후(箕侯)"란 명문이 새겨진 청동기의 발굴로 이것은 기껐해 봐야 그 위치 가 요서(遼西)지역에 까지 밖에 이르지 않으며 그 곳의 경우 그 세력또한 보잘 것이 없어 그 인근에 연(燕)에 종속된 추장인 은(殷)의 유민이 남긴 것으로 볼 뿐이다. 이곳에 대한 연의 지배 혹은 그 추장의 지배 역시 의심스러운 것이 그 훗날 연소왕 때의 진개가 조선을 공략한 후에 연5군 중의 요서,요동을 설치하였으니 이곳에서 명문정이 출토되었다고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연나라의 땅이 아닌 고조선의 영토였던 것이다. 다만, 그 영향이 극동 제민족에 일으킨 영향은 가볍지 않아서 연해주의 카라스크 문화는 은의 멸망이 일으큰 민족이동과 관계가 있다고 하며 그 이후 중국세력의 팽창시 마다 이 지역까지도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 즉 한국고대사에서 철기시대의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그 말기에 있어 연나라의 침공과 5군 설치라 할 수 있는데 고고학적으로 보면 기록과는 달리 장성의 끝은 요하를 넘지 못했으며 그 문화분포 양상도 대릉하정도가 끝인 것 같은데다가 진한(秦漢)의 혼란상에는 이것마저도 다시 상실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적어도 고고학적으로 서양사에 나타난 것 같은 철기문화의 충격을 한국사에 적용하기엔 아직 많은 무리가 따른다고 보여진다. 사실 일연의 기록만으로 보면 헤시오드가 쓴 것 같은 철기시대에 대한 염세적인 태도는 보여지긴 한다. 단군이 세상을 피해 신선이 되었다는 것이 그런 말이 아닐까하는데 과연 한국의 고고학이 이후 이 시대의 진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까지 명확히 보여줄 수 있을지 훗날을 기대해 보겠다.

<조선민족의 창시자 단군: 그 역시 철제무기로 무장한 군대의 시달림을 받아 은퇴하였는가?>


덧글

  • ㅋㅋㅋ 2011/07/02 18:29 # 삭제

    흥미로운 자료 잘읽었습니다.^^
    그런데 소위 중국보다 요서나 만주 지역에 더 오래되고 발전된 청동기 문명이 있었음이 확인되는 이시점에 철기가 소위 중국에서 유입됐다는 생각도 바꿔야할 것 같습니다.
    철기는 북방에서 소위 중원으로 유입됐다는 학설이 요즘은 설득력을 얻고있더군요.
  • DreamersFleet 2011/07/02 19:01 #

    그런 얘기도 들은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결국은 중국 철기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음. 한반도 자체가 중국(동양)문화권으로 편입되지요^^
  • 야스페르츠 2011/07/02 21:56 #

    청천강 이북에서 발견되는 전국연계 유물들은 어디다 다 팔아먹으셨수? 요하 넘어까지 발견되는 장성 유적은 또 어디다 팔아드셨고?
  • DreamersFleet 2011/07/02 22:45 #

    (1) 명도전은 연나라에서 발생한 화폐가 아니랍니다. 분포범위도 연나라나 중국의 영역을 넘어섭니다.
    (2) 장성을 어찌 정의하는지 모르지만 연북장성(이것이 장성인지도 의문을 제기하는 북한학계도 있습니다)도 보통 요하를 넘었다고 하지는 않지요.

    대략 요하-대릉하 사이로 보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요하를 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거기부터는 논란의 여기가 있을 것 같소만. 청천강까지란 것은 상당한 무리죠. 암요~
  • 야스페르츠 2011/07/02 23:17 #

    (1-1) 웃기고 있으시네요. 대체 어느 정신 나간 학자가 그런 헛소리를 하는지 출처라도 대 보시지요? 명도전에 앞선 첨수도와 같은 도폐라면 모를까, 명도전을 제작 유통한 주체가 전국연이라는 건 기초 중에 기초인데 말입니다? 딱 6개월 전에 모 씨의 개드립으로 사달 한 번 나고 댁도 개판으로 박살 나 놓고 또 이런 소리 하면 참 골룸하지 말입니다? 학습능력이 없어도 이 정도로 없으면 붕어 소리 듣습니다.

    (1-2) 전국연계 유물이 명도전만 있는 줄 아시나본데, 택도 없는 소리죠. 안산시 양초장 유적, 금주시 대니와유지, 적봉시 지주산 유적, 무순시 연화보 유적, 길림시 화전현 횡도하자 유적, 관전현 쌍산자공사 유적, 건평현 객라심 하동유지 기타 등등. 여기서 명도전만 나왔는 줄 아쇼? 평안북도 위원군 용연동 유적, 영변군 세죽리 유적은 또 어떻고? 여기서 쏟아져 나온 전국연계 철기 유물은 장난인감?

    (2) 연, 진, 한대 장성 유지는 최소한으로 잡아도 천산산맥까지는 나오거든요? 요하 넘어만 해도 신대자 유적, 신빈현 유적 등은 어디다 씹어 드셨는감?

    (3) 북한학계가 하는 말을 참 잘도 믿어요. 근데 북한 학계가 뭔 소리를 했는지 알긴 하는 건가? 쯔쯔...

    벌써 몇 번이나 말해 줬는데도 계속 헛소리를 하는 건 학습능력이 없는 붕어이거나 본인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Q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 암요~

  • ㅋㅋㅋ 2011/07/02 23:25 # 삭제

    야스페르츠 패, DreamersFleet님 승.

    야스페르츠/ "명도전을 제작 유통한 주체가 전국연이라는 건 기초 중에 기초인데"는 식민빠나 짱개들 시각이고 요즘은 고조선 화폐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거든?
    발로 쓰는 동북공정이나 그런 책 좀 보라고.
    유물 몇개 나왔다고 그게 그나라 지역이면 아프리카에서 새우깡 봉지 발견되면 거기가 우리나라 영역?

    보아하니 송호정이가 쓴 고조선 책 보고 읊어대는데 요즘 누가 송호정이 헛소리를 믿나?
  • DreamersFleet 2011/07/02 23:56 #

    글쎄 그렇게 명도전이나 기왓장이나 연나라망명객들이 남긴 드문드문한 가재도구까지 난 모르지. 뭔지 모르지만 본 포스팅의 본질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듯.

    난 명도전이 반드시 연나라에서 시작된 것이아니라고 했고 본질적으로 그 분포역이 연나라의 영역과 일치하지도 않는다고 말했을 뿐. 에컨데 제나라나 중원에서도 나오는데 그럼 그 나라땅도 다 연나라 영토인가?

    기초라? 증거는 있나? 설마 거푸집 몇 개 발견된 것 가지고 발길에 채일 만큼 많다는 명도전이 다 연나라에서 만들었다는 것은 아니겠지.

    나도 요하를 딱히 넘지 않았다고는 안했고 거기를 넘어서면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오. 물론 기왓장 몇개나 언제 지어졌는지 모호한 초소한두개 정도는 있을 수도 있겠지만,,,(그리고 연북장성 끝은 부신이라고 하고)--> 그래서 본 포스팅의 주제와는 이 정도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고.

    그리고 북한학계는 그 연장성을 안하거든요. 그냥 상하장이라고 하죠.
  • DreamersFleet 2011/07/03 00:02 #

    정정) 북한학계는 연장성이 현 만리장성과 같다고 볾. 연북장성은 "사기"의 "상하장"으로 간주.

    ㅋㅋㅋ/ 고마운 말씀이지만 이것은 좀 포스팅의 본질에 어긋나는 댓글이지 승패를 가릴 만한 것은 아닙니다. 딱히 야스페르츠에게 반박할 만한 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구요^^. 다만 특정인사의 실명을 거론 뒷담화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으므로 내일쯤 삭제할 생각이니 양해바랍니다.
  • 야스페르츠 2011/07/03 00:10 #

    본인이 모르면 무시해도 되고, 쏟아져 나오는 수준의 전국연계 철기들도 아무런 근거 없이 드문드문 나온다 하며, 차고 넘치는 전국연계 유적들은 어느새 연나라 망명객들의 가재 도구가 되니...

    게다가 이미 청천강 하구까지 유적이 발견되고 있는 마당에, 겨우 요하에나 머물렀으니 우리나라에는 별 영향이 없었던 듯... 하는 포스팅과 관련이 없다굽쇼?

    아........... 이 어찌 Q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신 진짜 불쌍하군요. 차라리 모르면 모른다고 하던가. 쯧쯧
  • DreamersFleet 2011/07/03 00:18 #

    그러니까 내가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나는 무시하겠다고 한 것이 아닌가? 아무튼 그 지역에서는 연나라 문화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점령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그냥 망명객이라는 것이고. 고조선 토착문화도 계속 계승되었던 것도 사실이라... 그렇게 믿고 싶으면 그렇게 믿던지. 하지만 강요는 말게. 증거도 없으면서 ㅋㅋㅋ
  • DreamersFleet 2011/07/03 00:20 #

    초보적인 초소가 있었을 수도 있지. 근데 위만이가 망명했을 때 고조선왕이 그에게 서변의 수비를 맡겼다는 말 기억할랑가 모르겄네? 그대가 그렇게도 존중하는 "중국사료"에 나오는 기록일세? 이런 마당에 설혹 군사시설이 나온들 이 포스팅에서 무엇이 문제가 될랑가? 껄껄껄.
  • DreamersFleet 2011/07/03 00:26 #

    아 말나온 김에 생각나는 것이지만 한번 물어봄세. 중국사서의 기록으로도 燕人 위만이가 담당한 곳이 西方이라 하였으니 (北方)이 아니고 이 지역은 당연히 요하이서를 말하는게 더 타당해 보이넹. ㅋㅋㅋ. 거기에 대해서는 할말있는지? ㅋㅋㅋ
  • 야스페르츠 2011/07/03 00:28 #

    한이 진대 방어선 포기하고 패수로 국경 옮긴 것도 내가 좋아하는 중국 사료에 나옵니다만? 쯔쯔. 이미 위만에게 서변 방어 맡긴 그 장소가 진고공지라는 건 어디다 팔아먹으셨나? 논란 운운하기 전에 스스로의 기초적 지식과 합리적 소양을 갖추시구려. 불쌍한 양반.
  • DreamersFleet 2011/07/03 00:32 #

    내 말에 오해가 있었나 본데 나는 동서의 국경 대치라면 지형상 요하이서에서의 대치라고 보여진다는 것이죠. 요하내에서 국경이 있었다면 동서보다는 남북으로 갈리기가 쉬울 것이고 난 그점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만,,,
  • 야스페르츠 2011/07/03 00:32 #

    평양이 서경이 된 건 왜일까요? 선조가 서천한 건 왜일까요? 참 구차한 사람일세.
  • 야스페르츠 2011/07/03 00:36 #

    그리고 어차피 댁은 모르겠지만, 아무리 망명객이라고 지껄여봤자, 공반 유물들의 층위나 우세를 따져보면 고조선계인지 동호계인지 하는 유물들은 전국연계의 등장으로 약화되는 경향이 뚜렷하거든요? 어느 나라 망명객이 본토의 헤게모니까지 바꿔놓는답니까?

    그냥 모르면 모른다고 하쇼. 진짜 구차한 양반일세.
  • DreamersFleet 2011/07/03 01:05 #

    서천이라?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오르는 것이 더 구차한 것 같구려. 그거야 서경으로 천도하니 서천이라 그랬겠지. <고려사>를 보시오 遼를 北朝라고 西朝는 바다건너를 말하고 있지요. 임금이 자리를 옮기는 것이야 그냥 대충 방위를 쓸수 있지만 국경같은 것을 쓸데도 그렇게 방위를 대충 말한다고 할 수 있는지? 그거야 말로 궁색한 변명으로 들리오.
  • DreamersFleet 2011/07/03 01:16 #

    아그리고 方이게 들어갔으면 遷과는 분위기가 다름. 方은 그 자체로 方位란 뜻도 있거던요.
  • 야스페르츠 2011/07/03 01:46 #

    쯧쯧. 方은 나오지도 않수다. 西界거든요?
  • DreamersFleet 2011/07/03 02:13 #

    딱히 위만얘기는 아니지만 여하튼 고조선 망명자가 수비하거나 거주하는 곳을 대체로 西方, 西邊, 西界라고 함. 요하의 안쪽땅엣 이런 국경이 생기긴 어려울 거외다. 파천하는 방향을 어떻게 적용시켰는지 모르지만,,,

    일단 연장성은 요하를 건너지 못하고 부신에서 끊긴다는 것이 하나의 팩트고 그 이상은 귀하의 상상이겠지. 물론 본인도 부분적으로 요하를 넘지 못했다는 것까지 부정한 것이 아니고. 하지만 그렇게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참 오늘 처음 보오. 어차피 팩트를 넘어선 학자의 것이든 추측에 불과한 것을.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도 강요하다니? 좀 무례라고 생각되오.

    좌우간 그대의 생각의 타당성에 대해선 차후 더 검증을 해봐야 겠지만 내 포스팅에서 그런 추론을 배제한 것은 내 마음이고 적절한것 같소. 맨처음 그대의 덧글을 참고로

    나는 그 어디에도 요하를 유물자체가 그곳을 넘었다고 하지 않았소. 그리고 장성의 동단은 FACT인 만큼 요하를 넘지 않았다고 명시했고, 문화분포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기에 "같다"고 했을 뿐.

    일단 나의 포스팅 자체에 문제가 없으니 더 상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라도 할 기회가 있을 것이오만, 잣니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좀 그렇지 않은지. 황당하오.
  • ㅋㅋㅋ 2011/07/03 11:19 # 삭제

    야스페르츠는 학술적 논리에서 안되니 어찌 이리 인신공격을 많이 하는지?
    정말로 보기 안좋네.
  • ㅋㅋㅋ 2011/07/02 23:35 # 삭제

    압록강은 고사하고 요하도 아니고 난하도 제대로 넘지 못한 전국연을 가지고 청천강까지 지배했다고 해대니 이걸 정말 어떻게 상대해줘야하나? 난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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