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츠 대령에게 - 운동권의 단지 靑瓦臺만평 (監視)



Colonel Kurtz's monologue 에서

현정권 핵심이라는 김경수의 손가락 단지의혹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다가 그만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커츠 대령의 "망발"에 미치었다. 의혹일 뿐이지만 현정권의 실세라는 386운동권들 중에 병역을 피하기 위해 손가락을 잘랐다는 이야기 자체는 많다. 특히 현정권과 노무현정권을 통해 널리 알려진 것 같다.

로마사에 관심을 가져왔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서양사적으로 봤을 때 병역면탈을 위한 단지는 병역이 천시되어 이민족에게 맡겨지고 상대적으로 사제가 유망한 직종이 되던 로마의 말기적 증상에서 있었던 양아치적인 관습으로만 생각하였다. 그런데 보니 동양사적으로 보면 그렇지 많도 않은 것을 보고 깜짝놀랐다. '신체발부수지부모'라던데 이 단지만은 그렇지 않은 예외인지 이를 테면 안중근 같은 경우 '단지동맹'을 맺었다고 한 것을 생각하니 이것을 그렇게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현정권 실세들의 의식세계를 알수 있는데 아마 스스로 행동을 양아치짓이 아닌 구한말 우국지사의 얼을 본받는다 생각했을 것이 눈에 선하다. 또 한편에서 현 청와대에서 나오는


호치민을 존경하느니

하는 소리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예전 386운동권에 대해서 민주화운동가라고만 피상적으로 알았지만, 그들이 홍위병세대와 비교되는 한편에는 '위수기동'으로 회자되는 김일성숭배자 김씨가문숭배자였다는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인 사실들이 있다.

커츠는 그런 아이들을 보고 패배를 운명으로 받아들였는데 오히려 어떻게 그렇더라도 그럴 수 있을까? 아마 그것은 미국인이고 남의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커츠가 수북히 쌓인 팔들을 보고 패배를 직감한 반면 지금 이시대는 위수김동하며 단지하던(본인들은 구한말 우국지사를 본받은 것이라지만 위수김동했다는 사실마저 부인할 수 있나?) 얘들이 커서 청와대에서 실세노릇 하는 꼴을 지켜보고 있다.

전두환 독재가 얼마나 엄혹했는지 모르지만 이건 아니다. 내 눈이 의심스러울 정도이지만 현실이다. 왜 이 나라에서 난데없이 호치민키즈들이 잘 커서 설치는 꼴을 봐야하나?






19세기 문학 속에 '진보' '민중'



있고 진보라는 말 자체가 사기다라는 말이 있고 그에 대한 불신의 말이 많은 듯 하다. 가령 자유에서 유래한 리버럴이란 말을 진보로 번역하고 있는 점이 그렇다는 것이다. 진보라는 말 자체가 최근에 급조된 말이라 해서 그런가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프랑스 혁명이전 부터 쭉 쓰이던 말인 듯하다.


어린 시절 동화로만 알고  '장발장'이 나오는 레미제라블을 다시 읽다 보니 이것이야 말로 정통 역사소설이라고 볼 수 있고, 장발장이 활동하던 프랑스혁명기의 정치에 대해 꽤 자세히 언급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여기서 주요 포커스는 장발장이란 인물에 있다. 그것이야 말로  역사에 대한 해설이나 평가를 더 중시하는 우리 나라의 대하역사소설과 다른 점인 것 같다. 이만 하면 서양 기준으로는 역사소설이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7월 혁명이나 2월 혁명 전후에도 프랑스의 크고작은 혁명열로 인한 소요는 계속 있었던가? 아무튼 1832년을 설명하면서 'liberal'이 아닌 불어 ' progrès'란 이름으로 진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당연히 민중을 의미하는 'populaire'라는 단어가 혁명에 대한 설명에서는 ' progrès'와 함께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보인다. 당연히 민중 혹은 국민을 참칭하는 가짜로서 민중과 대립하는 편에 부르조아지가 있다.

죽은 자와 산자를 논하면서, 진보를 '신(神)'과 혼동하는 사람을 나무라기도 하는데 단호히 진보를 '인간(人間)'의 상태라고 하면서 한마디로 진보는 진짜국민인 '민중의 영원한 생명(La vie permanente des peuples)'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진보나 민중이라는 말은 프랑스 혁명 이후로 부터 계속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왔던 것 같다. 사실, 19세기의 정치사를 알면 당연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인 것이긴 하지만.
  



좀더 훗날의 이야기를 하자면 위고는 고상한 반란인 '혁명'은 전체에 의한 것이고 소수당의 반란은 '폭동'이라고 구분하는데 이 기준에서 1917년의 '진보'를 볼 것 같으면 부루조아지가 가짜국민인 것과 마찬가지로 소수파인 볼세비키의 정변으로 볼 수 있겠다. 위고의 말이 유치한 이명준 수준의 몽상가의 말같기는 하지만 어찌보면 1917년의 일을 미리 예견하고 마치 뒷 날의 그 일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쓴듯하다.  

로마의 콜로나 가문과 우르시니 가문 인문

제11세기 초두, 伊太利(이태리)는 君主(군주)에게나 民衆(민중)에게나 한결같이 억압적인 봉건적 暴政(폭정)에 노출되었다. 人間(인간) 본연의 권리들은 수많은 共和國(공화국)들에 의해 옹호되었고 곧 그들이 자기들 자유와 지배를 도시로부터 인접 지역으로 확대시켰다.  貴族(귀족)들의 劍(검)은 부러졌고, 그 奴隸(노예)들은 解放(해방)되었으며, 그들의 城郭(성곽)은 헐리고, 이제 사교와 복종의 습관을 들였고, 자신들의 야망을 자치체의 영예직에 한정시켰으며, 베니스와 제노아의 자부심 강한 貴族政治(귀족정치) 상에서도 각 파트리키아누스 家門(가문)이 법에 종속되었다. 그러나, 허약하고 무질서한 로마의 政府(정부)는 내부의 반란적 후예들을 요리할 일을 감당치 못해, 반도들이 성벽 안팍에서 政務官(정무관)들의 권위를 비웃었다. 이는 政權(정권)을 위한 貴族과 平民(평민)간 싸움은 더이상 아니었다.  豪族(호족)들이 무장하며 獨立(독립)을 선언했고, 그들의 宮殿(궁전)과 城砦가 포위에 대비 강화되고 이들의 사적인 싸움이 수많은 封臣(봉신)과 從士(종사)들에게 맡겨졌다. 출신과 정서 상으로 그들은 그 지역에서 외지인이였고 진짜 로마인이라면 市民(시민)이라는 칭호를 버리고 자칭 로마의 君主로 칭하는 이런 오만한 이방인들을 외면하였을 것이었다. 일련의 검은 革命(혁명)들이 지난 후 族譜(족보)란 것들은 죄다 망실되었고, 家門의 이름들은 없어지고, 血族(혈족)의 혈통 수천 갈래가 한데 뒤섞였다. 고트族(족)과 롬바르드族, 희랍族과 프랑크族, 게르만族과 노르만族이  王家(왕가)의 恩賜(은사)나 勇猛(용맹)이라는 特權(특권)을 통해 가장 좋은 소유권을 얻어갔다.  이런 예들이 추정될 만한 것들은 널렸지만, 히브리人(인)이 원로원 의원이나 집정관 직위까지 올라선 것이 이들 비참한 유랑 망국민들의 긴 幽囚(유수) 속에서는 비길 데 없는 사건이라 하겠다. 레오 9세 시대에 한 부유하고 학식있는 猶太人(유태인)이 基督敎(기독교)로 개종하고 그의 代父(대부)인 당시 敎皇(교황)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레오의 아들 피에트로(Peter)의 열정과 용기가 그레고리 7세의 대의에 두드러지며, 교황은 이러한 그의 충직한 지지자에게 하드리아누스의 靈廟(영묘)와 크레스켄티우스의 塔(탑) 즉 소위 산탄젤로城(성)의 통치를 위임했다.  父子(부자) 양쪽이 무수한 자손을 가졌다. 고리대의 수익인 그들의 富(부)는 도시의 최고 귀족가문에게 배분된 채 광범위한 동맹자들을 끌어들여, 이 改宗者(개종자)의 손자는 성베드로의 玉座(옥좌)에 오르는데 조상의 덕을 톡톡히 봤다. 다수의 성직자와 민중이 그를 지지했다. 바티칸에서 수년간 재위하였는데 이 아나클레투스(Anacletus)에 對立敎皇(대립교황)이란 칭호가 붙이게 된 것은 겨우 성베르나르(St. Bernard)의 언변과 이노켄티우스 2세의 최후의 개선에 의해서 일 뿐이었다.  그의 패배와 죽음 이후로는, 레오의 후손은 별로 두드러지지 않아 현재 야심만만한 貴族 중에 猶太 혈통은 보이지 않는다. 서로 다른 시기에 몰락하거나 현재까지 변형된 영화를 이어가는 가문들을 거명하는 것이 著者(저자)의 계획은 아니다.  프란지파니家의 오랜 집정관 가계는 기근시대에 빵을 쪼개 나누어 먹은 인심 속에서 이름을 찾을 수 있고 이런 자선은 그들의 동맹이었던 코르시(Corsi)家와 함께 요새들로 둘러 싼 도시 내 넉넉한 공간에 문을 걸어잠근 것 이상의 진정한 영광이다. 사비니族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사벨리(Savelli)家는 옛 존엄을 유지해 오고 있고, 카피주치(Capizucchi)家의 낡은 칭호는 첫 원로원 의원들의 동전에 새겨졌다. 콘티(Conti)家는 시그니아(Signia)의 백작들의 영지 없는 영예를 보유하고 안니발디(Annibaldi)家는 카르타고 영웅으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면 아주 무지하거나 아주 평범해졌을 것이다. 

도시의 동료나 군주들 중에 콜로나(COLONNA)와 우르시니(URSINI) 家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이들의 가문의 이야기야 말로 현대 로마 年代記(년대기)의 정수다.  I. "콜로나(Colonna)"란 이름과 문장(紋章)은 아주 의심스런 어원적 유래를 가진다. 연설가나 골동품 애호가들이 트라야누스의 기둥이나 헤라클레스의 기둥 혹은 예수가 태형받은 기둥, 또는 사막에서 이스라엘人을 안내한 빛나는 기둥들에 이르기까지 기둥이란 기둥은 간과하지 못한 모양이다. 1104년의 역사적 첫 출현은 그 힘과 전통을 증언하나 이름 자체는 단순한 의미만 설명한다. 카바이(Cavae)의 찬탈에 의해 콜로나家는 파스칼(Paschal) 2세의 군대를 자극했지만 합법적으로 자갈롤라(Zagarola)와 콜로나(Colonna)의 세습영지를 로마의 캄파냐(Campagna) 평원에 보유했고, 후자의 영지의 도시들은 저택과 사원의 유적인 우뚝선 기둥으로 아마 치장되었을 것이다.  이웃 도시 투스쿨룸(Tusculum)의 절반도 마찬가지로 소유한데서 투스쿨룸 백작들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추정케 하는데 이들은 10세기 使徒座(사도좌)의 폭군들이었다. 그들 자신과 대중적 견해에 따르면, 가장 근원적인 먼 유래는 라인강 어귀에서 비롯되었다 하며, 독일의 君主들은 700년의 혁명 동안 때론 재능으로 언제나 부로 증명해온 한 귀족 가문과의 친연성이 가짜든 진짜든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13세기의 끝에, 가장 강력한 지파는 교회존중과 무력면에서 두드러진 6형제와 삼촌으로 구성되었다. 이들 중 피에트로(Peter)가 로마 원로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개선마차를 타고 카피톨 언덕으로 안내되어 카이사르(Caesar)라는 헛된 구호와 갈채로 환영받았다. 요한(John)과 스테펜(Stephen)이 안코나(Ancona) 후작과 로마냐(Romagna) 백작으로 선언된 것은 니콜라스 4세에 의해서인데 너무나 편향적 후원자인 탓에 풍자적 초상으로 속이 빈 기둥 속에 幽囚된 것처럼 그려졌다.  그의 죽음 후에 그들의 거만한 행동이 인류 중 가장 냉혹한 인간의 불쾌를 사게 되었다. 삼촌과 조카사이인 두명의 추기경은 보니파티우스 8세의 선출을 부인했고 콜로나家는 일시 그의 현세적이고 영적인 무력에 억제되었다. 그는 그의 개인적 적들에 대항해 십자군을 선포하였다. 그들의 영지가 몰수되고 티베레 양안의 요새는 성베드로의 군단과 경쟁 貴族들에게 포위되었다.  팔레스트리나(Palestrina) 혹은 프라에네스테(Praeneste)가 폐허화한 후, 그들의 주 근거지는 땅에 영구적 황무지화의 상징인 쟁기날로 표식되었다.  몰락하고 추방되어 수배된 6형제는 구원과 복수의 희망은 버리지 않은 채 위험한 위장 도피로 유럽을 배회하였다.  그 두 희망의 입장에서 프랑스 궁정이 가장 확실한 피신처였다. 그들은 필립(Philip)의 사업을 촉진하고 지도했다. 그리고 著者는 그들이 幽囚된 폭군의 불운과 용기를 존경하였다면 그들의 관대함을 칭찬하고 싶다. 그들의 民法(민법)은 로마 民衆에 의해 무효화되었고 콜로나의 영예와 소유가 그들에게 회수되었다. 몇몇 추산을 해 보자면 그들의 富는 그들의 상실에 의해 평가할 수 있고, 그들의 상실은 故人(고인) 된 교황의 조력자들와 상속자들에게 부과된 10만 플로린의 금화의 손실에 의해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영적 검열과 부적격판정들이 그의 신중한 후계자들에 의해 철회되었고 그 家門의 재산은 일시적 태풍에 의해 더 확고해졌다. 스키아라 콜로나(Sciarra Colonna)의 대담성은 보니파티우스의 幽囚에서 그리고 한참 후 바바리아(Bavaria)의 루이스(Lewis)의 대관에서 두드러진다. 황제의 감사로 그들 紋章  속 기둥은 왕관을 두르게 되었다. 그러나, 명성과 재능에서 家門의 으뜸은 老(노) 스테펜인데, 페트라르카(Petrarch)가 그 자신의 시대를 뛰어넘어 고대 로마 시대 비길 英雄(영웅)으로 존애한 이다. 박해와 추방에서도 그는 民族에게 그의 평화와 전쟁에 대한 능력을 보여준다. 고난 중에 그는 동정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이었다. 다가올 위험은 그의 이름과 조국을 공언케 하였다. "이제 어디에 당신의 요새가 있는가?"라는 물음에 그는 가슴에 손을 얻고 "여기"라고 답한 것이다. 같은 덕성으로 후손의 귀환을 지원했다. 쇠퇴하는 그의 시대의 종말까지 스테펜 콜로나의 어른들, 성격, 자식들은 로마 공화국에서와 아비뇽(Avignon) 궁정에서의 그의 고결함에 우쭐댔다.   II.    우르시니家는 스폴레토(Spoleto)에서 이주해 왔다. 뛰어난 인물들로 12세기에 그려지는 우르수스(Ursus)의 아들들은 겨우 이 족속의 아버지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 혈족의 수, 용감, 원로원과 추기경회의 영예, 셀레스틴 3세와 니콜라스 3세란 그들 혈통의 두 교황의 등극으로 곧 로마 귀족들 중에서 두드러졌다.  그들의 富가 족벌주의의 초기 남용으로 비난될 수 있다. 성베드로의 영지가 그들의 호의 속에 셀레스틴에 의해 양도되었고 니콜라스는 그들을 위해 군주들의 동맹을 간청하고 롬바르디와 투스카니에 새 왕국을 세우고 로마 원로원  종신의원직을 수여하게 할 야심을 가졌다. 콜로나家의 위대성에 보인 모든 것이 마찬가지로 대를 이어 오래 이어온 싸움에서 대등한 적인 우르시니家의 영광에 도 보인다. 그것이 교회적 국가를 250년간 교란시켰다. 월등함과 권력에 대한 질투심은 그들 싸움의 진짜 배경이었지만, 훌륭함의 허울적 표식으로 콜로나家는 기벨린(Ghibelines)이란 이름과 帝國(제국)의 黨(당)을 품었고 우르시니家는 겔프(Guelphs)란 칭호와 교회의 대의를 옹호했다.  독수리와 열쇠들이 적대자의 기치에 나부꼈고, 그 싸움의 유래가 잊혀진지 오래가 되어도  伊太利의 두 당파는 서로 거세게 부딪혔다.  교황이 아니뇽으로 물러간 후에, 임자 없는 공화국을 무력으로 다투었고 매해 경쟁자로 원로원 의원 두 명을 뽑는 너절한 합의로 불화의 오류가 영속화되었다. 그들의 사적 적대에 의해 도시와 모국이 황폐화되고 흔들리는 균형 속에 성공은 수시로 교대되었었다. 그러나, 우르시니 家의 가장 명성있는 대장이 少(소) 스테펜 콜로나에 의해 기습 살해되기까지는 어느 쪽 家門도 칼날에 쓰러지지 않았다. 그의 개선은 휴전을 파괴했다는 비난으로 얼룩졌다. 그들의 패배는 교회 문앞 순진무구한 아이와 두명의 조력자들의 암살로 되갚아졌다. 승리한 콜로나는 한 단년 임기의 동료 의원과 함께 5년 기간 동안 로마 원로원 의원으로 선언되었다.페트라르카의 詩想(시상)이 이 관대한 젊은이 그의 영웅의 아들이 로마와 伊太利에 본래의 영광을 회복시킬 것이며 그의 정의가 대리석 기둥의 영원한 지주를 전복하려한는 영원한 늑대와 사자, 뱀과 곰들을 박멸할  한 소망, 한 희망, 한 예언을 고무시켰다.  




-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쇠망사>, 제69장



전체적으로 기번의 로마사는 서로마제국 멸망이후 동로마제국을 중심으로 로마사 나아가서는 유럽사를 개관하는 구도다. 다만, 마지막에 다시 그는 동서로마의 기원이 되는 도시 로마의 역사로 되돌아와 복잡한 심경으로 기나긴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교황 자신이 주권자가 되고 로마에서 나중에는 실질적으로는 호족들이 그 주권을 찬탈하고 교황을 꼭둑각시로 만들었다는 이 당시 교황령의 역사지만, "호족들의 역사를 모두 기술하려는 것이 의도한 바가 아니라"는 기번의 말처럼 소략해서 기번의 말만으로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 마지막 부분이 아닐까 한다. 대표적으로 콜로나가문와 그들의 맞수 우르시니가문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하고 아비뇽 유수가 시작되던 시기의 보니파티우스 8세와  공정왕 필립과 콜로나 가문의 얽히고 섥힌 관계들을 소개된다. 콜로나 가문의 상징이 "기둥(column)"이 되었다는 가벼운 웃음이 나올 만한 일에 시성 페트라르카 마저 진지하게 송시를 바쳤다는 데서는 쓴웃음 짓게 한다. 문득 콜로세움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가 하는 엉뚱한 의문이 떠오르기도 한다.


최근 김광석 부녀타살의혹에 즈음 이명박정부하 3大미스테리事件





과거 이명박 정권하 3대미스테리 사건으로 타블로, 오원춘과 더불어 "안재환" 사건을 들었는데 이 중에서 안재환 사건은 오래전에 자살인지 타살인지 불확실하다고 썼었다.



확실히 김광석 건도 미스테리임에 틀림없다. 정황으로 보면 영락없이 타살이나 정작 시신에선 타살의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항간에 안재환을 두고 장기매매살인이라 하였는데 그가 유명인인 점을 생각하면 역시 수사기관의 부검결과는 조작하기 어려웠다고 보는 것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추가적인 의혹은 역시 풀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재환 사건의 경우 그 여파로 일어난 인터넷활동이 결국 최진실이란 또 한명의 유명인을 자살로 몰고 갔다. 마친 그것을 명분으로 인터넷실명제가 강화된 것으로 기억하고 명분을 얻었다. 이 때는 이명박 집권초다. (입법은 한 해전 노무현 정권 말로 안다.) 그리고 이명박정부는 국정원 등을 동원해 인터넷여론을 조작하기 시작한다. 최진실에 대한 악성소문 중 찌라시와 청와대가 쏘스란 이야기도 들렸다. 대체로 찌라시는 정보기관이나 권력기관 등을 쏘스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사건 이후 이명박 시대 연예인자살률이 비상히 높았던 것도 나는 의심스럽다. 이 모든 것이 의혹일까? 혹 어떤 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한 음모일까?

이런 점 때문에라도 자살이라도 의혹은 의혹대로 풀어내야 한다. 김광석 안재환 루머의 악성인 면은 바로 가족간에도 불신을 심어놓는다는 그러한 점 때문에 더하다. 한마디로, 김광석 사건이든 안재환 사건이든 자살이더라도, 그것이 다는 아닌 그런 사건이다.   

대문







"간단히 말해, 한 폴리스로서 우리는 헬라스의 학교 같은 곳입니다. 저는 세상에서 우리 아테네인들을 뺀다면 오직 자신의 힘으로만 그렇게 수많은 위기를 돌파하고 다방면에서 행운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을 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상황이 필요로 하는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란 것을 이 나라의 힘이 입증한 바입니다. 동시대인 중 아테네만 명성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힘을 확립했고, 또 우리만이 패배를 안겨준 적에 복수하려는 공격자들에게 기회를 주거나 우리의 보호국들이 우리의 지배하는 능력을 의심할 여유를 주지 않았습니다. 현재 이래 모든 시간들의 존경이란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우리의 이러한 힘에 대해 증인을 남겨두었으며 뿐만 아니라 강력한 증거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의 송시작가들이나 사실 앞에서는 허무하게 사라질 인상만으로 사람들을 혹할 글을 쓰는 자들에게 호메로스가 필요한 것과는 달리, 우리는 모든 바다와 육지에 우리의 고귀한 길을 놓고 악이든 선이든 불멸의 기념비를 우리 앞에 세워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조국을 위해 단호하게 그리고 고귀하게 싸우다 죽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살아남은 자들 모두 역시 조국을 위해 고난을 견딜 준비가 된 아테네입니다."

- 페리클레스의 연설,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전쟁사, 2.41>               




1. 두번째 대문입니다. (업데이트 2016.01.13)

2. 이 블로그는 로마사 등 고대사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대표적 글들은 틈틈히 몸젠 <로마사>의 제3권을 번역해 올렸고 "로마제국쇠망사"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그 밖에 고대사 공부에 도움이 될만한 잡다한 글들이 있습니다. 방문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며, 글이 부족함이 많아 실망스러우시더라도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3. 블로그운영원칙은 첫대문과 같습니다. 이글루스는 지금은 과거만 못한 면이 많다고 합니다. 특히 점잖은 척하면서 굉장히 조직적 계획적 악의적으로 자신(들)과 어긋나는 사람을 공격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가미가제식 트롤전술이나 악플인해전술도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제가 처음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이곳에 올때 베푼 무제한 관용 대신, 본블로그에 작성된 댓글 트랙백 막론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이 언제 작성되었건 가리지 않고 삭제됩니다. 특히 방문자 상호간 싸움 자제해 주세요. 대체로 본 블로그나 주인장을 공격하려면서 논리적인 반박이 아닌 잘못되고 삐딱한 시도를 하는 글들이 그 대상입니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만 아니면 본블로그를 찾는 그 누구라도 환영입니다.

(이런 불미스런 일들은 요즘 본 블로그나 이글루스 자체가 저조한 편이어서 줄은 것 같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와 별도로 개인사정으로 인해 조만간 비로그인 덧글 금지할 수도 있습니다.)

4. 티스토리에 만든 두번째 블로그입니다. http://goodadmiral.tistory.com/ 

 되도록 같은 내용으로 올리지 않으려 합니다. 잡다한 번역을 주로 올립니다. 예를 들어,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인상적인 단락과 <수에토니우스 네로전>이나 <몸젠 로마사>의 다른 부분들입니다. <로마제국쇠망사>도 수정보완하려는데 완성을 기약하고 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아무튼 방문 수가 저조한 편이니 자주 찾아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권력을 위해서는 부모자식도 없는 냉혈동물 갑 동양사



서양도 다르지 않겠지만 동양의 군주들 사이의 일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띄는 편이다. 특히 바로 우리의 조선시대에도 레임덕을 방지하기 위한 부자간 다툼은 거의 정형화된 권력 게임의 법칙으로 이어져 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 와중에 사도세자가 죽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권력을 지치기 위해 친아들을 굶어죽인 처사를 어찌받아들여야 할까만은 영조의 경우는 이미 그가 원인이 있다지만 사도세자의 상태가 이미 극단적 조치를 어느 정도 정당화해줄 수 있는 경우일 것 같다. 그리고, 우리네 못난 조선의 군주들의 경우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다분히 그것을 공격자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자식이나 부모를 희생시켰다는 소극성과 방어성이 있어 한편으로 동정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역대 피도 눈물도 없는 부모 군주 갑은 역시 중국사 전무후무의 여제 무후일 것 같다.

권력을 방어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단지 권력을 잡기 위해 멀쩡한 자기 자식을 교살해 버린 것인데 이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인지? 자기가 죽인 자식을 놓고 악어의 눈물을 뚝뚝떨어뜨리며 경쟁자들의 짓으로 몰아 권력을 독점하기 시작한다. 하기야 근자 우리나라에 있었던 괴사건 중에 특히 여성싸이코 패스들의 활약이 대개 이 계통이어서, 자식은 물론 주변에 만만한 가족을 희생시켜 보험금을 타내는 것은 많이 알려졌다. 그런면에서 권력의 단물을 위해 만만한 가족을 희생시켰던 측천의 행동도 이해할 수 있다.

웃기면서도 주목되는 것 하나는 이런 사이코패스형 인물이 제왕의 자리에 앉았다 해서 군주랍시고 재평가니 무어니 하며 지도자로서 평가한다는 것이 그렇다. 다만 힘없는 여자니까 연약한 여성이나 할 수 있는 행동이니까 그 또한 이해해 주자? 이렇게 마음먹으면 적게나마 이해가 되려나.

두번째는 이런 류의 인물에게 고조선이래 한국사의 정통성의 한 축을 담당했던 고구려가 멸망했다는 실망감이 그것이다. 하기야 연개소문 자체도 시군의 죄를 범한 인물이고 보면 측천 같은 인물을 맞수로 삼다가 드디어 나라를 그녀에게 망하게 한 것도 어찌 보면 인과응보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나 망하게 한 당녀는 망함을 당할 연개소문이나 그 못난 자식들에게는 더 없는 맞수다. 물론 고구려는 군주라도 폭군을 시하는 전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오래되어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연개소문이 죽인 영류왕의 경우는 그런 흠있는 군주는 아니었으므로 변명되기가 쉽지 않다.



대공개! 박대통령이 영국 방문 중 세팅한 화장대 박근혜 기인 혹은 극기녀



말로만 듣던 연예인이나 쓸 물건이라는 화장대가 공개되었다.
 




결국 조폭과 이명박이 대한민국 실세란 말? 이명박정부하 3大미스테리事件


이번 <그것이 알고 싶다> 박근혜 친척 살인사건 편을 보니 우선 사건 당시가 이명박 통치하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 같다. 이명박 정권이 지켜보는 중에 단순히 조폭들과 경찰 몇 명 포섭해서 유력 대통령후보 친척이 관계되고 후보 조차 관련된 정황이 있는 사건이 그냥 넘어갈리가 있을까.

이게 이명박 스타일이란 게 이명박 시기에 유행했던 일련의 괴사건 중 하나랑 비슷하다. 전주예식장 사장 살인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명박 시기에 난 사건인데  의혹은 눈덩이 같은데 경찰은 말같지 않은 시나리오 이상으로 조사하지 않는 것인데 박근혜 정부에서도 비슷하게 결론이 났다.

상식적으로 이게 박근혜와 관련된 일이라면 이명박이가 몰랐을리가 없다. 아니 얘기를 따라가 보면 살인을 청부받은 조폭 중에 살아있는 놈이 사실상 박근혜 정부 실세라는 요상한 결론이 나온다. 박근혜를 한방에 보낼 약점을 잡고 있으니 말이다. 박근혜나 다른 야당인사 비리라면 눈을 부릅뜨던 이명박 정권에서도 몰랐을리가 없다.

허술하지만 하나의 살인미수로 발단이 되어 눈덩이처럼 커지는 과정은 어떤 목적과 계획하에 준비되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들고 ........


박근혜, 극기와 집착 사이 박근혜 기인 혹은 극기녀


가방끈에 대한 저 비범한 집착. 저 가녀린 체구에서 어떻게 저리 묵직한 가방을 끝그네 놓지 않을 힘이 나올까.
흡사 부친의 권력을 거머쥐려는 악력을 연상케 한다. 박 부녀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라 할 수 없다.
한류스타 뱜칠 연예인 패션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이슬람 패션까지도 상황에 따라 아우를 수 있는 허영의 끝판여왕. 도대체 일국의 국가원수로서 저런 연예인이나 입을 법한 옷을 입고 세계정상들을 만날 멘탈의 저력은 무엇일까.


이건 앞과는 전혀 반대되는 당선인 시절 서민코스프레 하며 독거노인 방문하던 때인데 극단적으로 저 불편한 무릎꿇기 자세로 뭐에 취한 듯 별다른 고통 없이 한참 떠들수 있는 저 의지력! 옆에 사람들 표정과 대비되는,,,,,,,, 같이 무릎꿇은 아줌마 표정이 않좋고 편한 자세로 않은 어르신들도 그닥........


결론적으로 박에게는 가방이나 패션이 중요한 게 아니라 차도르건 서민패션이건 한마디로 다 소화할 수 있다 이건 것 같다. 최태민의 주술에 걸린 상태기에 그들이 시키는 것이라면 뭐 든 할 수 있고 가방의 무게도 무플 꿇이의 통증도 전혀 못느끼는 것이 바로 이인 박근혜라는 것을.




더럽다고 남의 집 변기도 멋대로 뜯는 멘탈 박근혜 기인 혹은 극기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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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쇠망사

몸젠 로마사 (번역) by DreamersFleet